2018/01/06 18:24

나의 너의 뒷모습 * ZR



  * 나의 남편, 나의 너 



 아기가 잠이 들면, 휴대폰을 보면서 늘 찾았다. 
칭얼대는 이유가 무엇인지, 분유를 얼마나 먹여야 하는건지, 내년 복직을 앞두고 주변 어린이집이 어디가 좋은지 등등 온통 머릿속은 아기에 대한 것들이었다. 밤에도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늘 스마트폰을 보며 검색, 질문, 정의 


 어제 밤새 찌를듯한 통증으로 눈에는 눈물이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흐르고 있는데 아기는 배가 고프다고 울고, 친정 엄마는 급하게 분유를 타고 있었다. 회사에 가기 위해 일어난 쿵은 거실을 지나치며 울고 있는 나와 우는 아이를 한번 쳐다보더니 씻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순간, 치밀어 오르는 서러움과 화가 났다. 
나는 상관없지만, 아이가 울고 있는데 안아주지 않고 지나갔다는 사실에 당장이라도 쏘아 붙여 말하고 싶지만 엄마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내 몸이 일어나지지 않았다. 
그리고, 출근해서 몇시간 뒤 쿵에게 메세지가 왔다. 

 ' 자나.... ' 


 아기가 자고 있는지, 요사이 계속 잠을 이루지 못한 나에게 묻는 것인지, 그 중간쯤의 저 단어에 그동안 응어리져 왔던 모든 말들을 두서없이 가감없이 다소 매몰차게 모두 뱉어냈다. 



 삼칠일. 면연력이 약한 아이와 출산으로 인한 산모의 건강을 생각해 외부인과의 접촉을 금한다는 21일. 
그 날이 채 지나기도 전 20일부터 3일 연속으로, 내가 조리원에서 나온 후 며칠 지나지 않아 시댁 식구들이 방문을 했다. 
그들에게는 12월의 마지막날. 1월 1일. 그리고 새해의 하루 새 가족의 탄생을 축복해 주는 좋은 의미였을 것이다. 
수고했다고 잘 키워보라고 내게 말하고, 연신 남편의 어린 시절보다 더 인물이 좋다며 가만히 자고 있는 아이를 보고도 다들 웃음을 지어줬다. 
그 마음이야 잘 알겠지만, 시간에 대한 개념이 아이가 언제 깨고, 언제 수유를 했는지로 바뀌어 버린 나의 일상에는 꽤 민감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예민한 집주인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 쿵은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뱃속에 있던 아이가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건 기쁨이고 축복이고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생명은 내게 임신전부터 괴롭히던 '책임감' 이라는 무거운 중압감이었다. 
자유롭게 다니던 여행이 큰 계획이 있어야 가능하고, 매일같이 출퇴근 하는 규칙적인 나라는 사람의 생활은 아이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맞춰졌다. 
' 육아는 원래 이런거야.' '이게 현실 육아야.' 
라고 말하는 친구와 오늘의 아기 변에 대해 이야기하며 또 울음 소리에 달려가는 요즘의 내 모습이다. 


 
 

 우리는 각자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나는 나의 모유수유에 대한 스트레스와 갑작스런 육아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고 있었고, 쿵은 도와주지 못해 어쩔줄 모르는 남편의 하소연이었다. 
아이가 울어 일방적으로 내쪽에서 끊어버린 대화의 마지막에는 

' 속상하다 네가 이럴때마다... ' 


 걱정이 지나치게 많은 내가 늘 스스로에게 걱정을 부여하고 근심을 쌓아두고 살았던 내가, 이제 아이에 대한 걱정까지 하고 있음을 속상해하고 있었다. 아이에게는 미안하지만 본인에게는 내가 제일 중요하다며 아프지 말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집안 아무렇게나 흘려버린 아기의 가재 손수건을 빨래통에 넣어주고, 자다가도 소리가 나면 일어나 빨래를 널고 다시 묵묵히 잠이 들고, 잠결에 칭얼대는 아기의 가슴을 토닥거려주며, 팔목이 아파 금새 지쳐버리는 나를 대신해 어느새 옆에 와 트림을 시켜주는 아빠가 되어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의 쿵은 그렇게 아빠가 되어 있었다. 
나약한 나에게 좀더 강인한 엄마가 되라고 다그치기 보다는 지금의 내 자신을 놓아버리지 말라고 늘 응원해 주고 있다. 




 지인 결혼식에 가기 위해 오늘 옷을 양복을 꺼내 입고 나왔는데, 터무니 없는 넥타이를 메고 나와 한참을 웃었다.
다른걸로 바꾸라며 말해주는데, 그동안의 쿵에게 너무 무신경했던 것 같아 갑자기 울컥했다. 갑자기 부모가 된 건 나 혼자만이 아닌데, 지나치게 예민하게 스스로를 몰아세워 모두를 힘들게 한 건 아닌지 - 
내 남편. 나의 쿵에게 나는 우리 아이의 엄마이기 이전에 아내, 그리고 가장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였을텐데 
임신 기간부터 유난히도 민감했던 내 곁에서 지금까지 묵묵히 내가 무너지지 않게 늘 그 자리에서 불평없이 내게 긴 밤의 달처럼 늘 함께해 주었음을 느낀다. 

 잘 가라고 배웅해주면서, 꼭 껴안아 주었다. 
' 미안해. 몸이 아프고, 모든게 서툴러서 아직 많이 부족해. ' 
' 나도 미안해. 화내서 미안해. ' 
라며 더 꽉 끌어안아 주는 나의 쿵. 


 이렇게 우리는 부모가 되어 가는 것 같다. 
평소같았으면 한나절은 지나야 풀렸을 다툼도, 아이가 울어 어느새 같이 앉아 고민하며 말을 나누고 있었고
우리의 아이가 주는 작은 행동에도 함께 웃는다. 
늘 여행을 다닐때면, 내 모든 짐을 양손 가득 들고 다녔다. 
그리고 나의 소지품도 어깨에 꼭꼭 메어 들고 다녔던 나의 쿵. 
덕분에 양손이 비어 있었는데, 이제 그 한 손은 우리 아이의 손과 맞닿아 있겠지. 


 
 요사이 수많은 아이 사진 속에서 발견한 임신 25주. 프랑크푸르트 역 앞에서의 쿵의 뒷모습이 짠 하면서도, 한없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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